[말씀제목] 가장 중요한 일

[본문말씀] : 창5:1~5 

[설교자] 이요셉 목자님

[설교일] 2026. 05. 30. 토. 오전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이라 하였고
-아담은 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창5:1~5)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고 말합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는 뜻이지요. 누가복음 12장 16~21절의 말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만 봐도 (영어권에서는 ‘부유한 바보의 비유’라고 합니다) 부자는 재물 축적을 ‘부요’의 기준으로 보지만, 결국 목숨을 잃어 그 재물의 의미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세상에서는 세상에 태어나 세상을 즐기다 가는 것을 지혜로운 생각이라고 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가져 갈 수 없지만 무언가 남길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지막에 무엇을 남기고 왔는가를 가지고 판단 하십니다.

창세기 4장1절 아담이 등장합니다. 창세기 4장16절부터 가인의 족보가 나오고 창세기 5장1절 부터는 아담의 계보가 나옵니다.

가인도 아담의 아들이지만 족보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가인이 새로운 일가를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계보는 단순히 사람의 이름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가문의 중심이 무엇인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창4:16~17)

가인은 도시 성읍, 즉 성을 일구었고 그것을 아들의 이름으로 남겨주었습니다. 그 후손들도 대단합니다.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창4장21~22)을 보면 그 후손들은 문화를 창조 했습니다. 천재라는 뜻입니다.

세상적으로 가인은 얼마나 좋은 부모인가요? 세상 모두가 이런 가정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 가정 안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4장23)을 보면 라멕의 가정에 균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아내가 두 명이었고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모습을 보면서 하와에게 주신 저주가 생각납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3:16).

일반적으로 여자는 남편에게 의존적이며 남편은 그 아내를 다스린다고 하였습니다. 그 저주가 라멕의 집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저주가 있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예는 하나님의 자손들을 말합니다. 아담을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창5장에 나오는 아담은 죄인 아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아담입니다. 즉 아담의 아버지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아담의 계보’가 있고 ‘가인의 계보’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계보에 속해 있나요?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9)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아브라함은 아담의 계보에 속했습니다. 아담의 계보에 아브라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아브라함의 계보에 속해졌습니다.

돈과 능력이 가훈인 가인의 계보와 달리 아담 계보의 가훈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입니다.

모양과 형상은 다른 단어이지만 같게 볼 수 있습니다. 형상은 원어로 ‘쩨렘’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우상이라고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우상은 보이지 않는 신을 보이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이 바로 하나님의 우상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외형을 닮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영이 있고 생명이 있고 사람에게만 볼 수 있는 존귀한 성품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11:7)

사람이 고귀한 성품을 드러낼 때 하나님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 모습을 자식에게 전달 하는 것이 아담의 계보입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골3:9)

옛 사람과 그 행위란 형상의 반대말로써 사람마다 타고난 본능을 이겨내고 하나님을 닮아가는것을 말합니다.

신앙 생활을 통해 내가 변화되어 그 형상을 자녀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귀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카피‘하는 것을 성경에서 말하는 단 한 가지 라고 축약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말2:15)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가정을 지으신 이유 또한 경건한 자손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담 계보의 7대손에는 믿음의 에녹(창5:21)이 있지만 가인의 계보 7대손에는 여전히 천재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인의 자손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 변화되고 우리 자녀도 이 안에 들어오도록 애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땅을 가만히 나두면 쌀이 자라나요 잡초가 자라나요? 자유로이 두면 무엇이 자라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전달해야 합니까?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7)

강론이란 억압이 아닌 충분한 설명입니다. 농부가 애써야 쌀을 얻는 것처럼 부모들도 아이들 양육에 애써야 합니다. 아이들이 가진 죄 성도 처음에는 야들야들한 풀 같지만 순식간에 나무가 되어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 나무를 부러뜨려야 하기 전 우리가 더욱 긴장하며 집중적으로 아이들을 애써 지켜야 합니다. 바른 가치관을 가르치며 아담의 계보에 속해 있도록 아이들을 지켜야 합니다. 

욥은 훌륭한 신앙인이고 고난을 통해 신앙의 다음 단계로 넘어간 인물입니다.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욥1: 5)을 보면 욥은 자식들이 마음으로 지었을까 하는 염려로 그것을 위해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칭찬 하였습니다. 신앙인은 믿음으로 양육 받아 믿음이 성장하고 그 믿음을 다시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회복해서 물려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