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1)
26.5.2 말씀 신영길 목자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무엇이 죄인지 알아차리기
죄사함을 구하려면 무엇이 죄인지, 죄가 아닌지와 그 죄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합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인정을 안 하려고 합니다. 자존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나보다 어린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지적하면 인정하기 싫어집니다. 그래서 죄사함을 구하라는 이 명령은 죄를 죄라고 인정할 줄 아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에 대해서 얼마나 고운 필터를 갖고 계십니까?
사람마다 필터의 종류가 다른 것 같습니다. 만약 ‘무엇이 죄일까요?’ 라는 주제를 가지고 설문 조사를 한다면 아마 여러분들의 답이 다를 것입니다. 살인, 거짓말, 도적질 이러한 것은 다 죄라고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나의 삶에 더 구체적으로 적용을 해보면 답이 달라질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그러나 얼만큼 미워해야 살인인지 정확하게 떨어지는 답을 쓸 순 없습니다.
도적질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입니다. 만약 주인이 없는 사이 잠시 쓰고 갖다 놓았습니다. 이것이 도둑질일까요, 아닐까요? 거짓말은 남을 속이는 말입니다. 그러면 선한 거짓말도 거짓말일까요?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우리는 다 똑같은 답안지를 제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양심이 있지만 우리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죄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죄인지 아닌지 가장 정확히 판단하시는 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 대해서 늘 민감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판단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는 하나님 앞에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심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양심이 무디거나 혹은 기억력이 나빠서 전에 지은 죄에 대해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모든 죄를 고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무릎 꿇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기억지 못하는 죄도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그때는 우리가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죄라고 하면, 내가 했던 어떤 말과 행동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물론 그것을 떠올려서 죄라고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을 수 있는 죄 중에 가장 큰 죄, 우리가 잘 지각하지 못하지만 가장 무거운 죄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요일 1:4)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형제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첫째로 ‘언제나 오래 참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을 해주는 것보다 가장 먼저 오래 참고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내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래 참는다고 하면 어떤 사람이 변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근데 이것만 오래 참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변할 때까지만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야 합니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이렇게 회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도저히 그 사람은 사랑할 수 없어요’ 이 말은 하나님 앞에 말이 안되는 말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회개의 방법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회개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백한다는 말은 스스로 말한다는 뜻입니다. 누군가가 “네가 잘못했으니 빨리 잘못했다고 말하라”라고 해서 억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말해야 합니까? 남의 죄가 아니라 나의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나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자꾸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말한다면 이것은 자백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나를 도발했습니다. 나에게 무례하게 행동했습니다. 나를 화나게 했습니다.” 회개는 내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양심이라는 거울이 있습니다. 양심이 거울과 같다는 것은 참 좋은 표현인 것 같습니다. 거울 없이 얼굴을 스스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날의 잘못, 그 사람 앞에서 잘못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면 그때 그런 말과 행동을 했던 자신의 얼굴이 보입니다. 아주 신기한 능력입니다. 9절의 ‘자백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보면 ‘동일하게 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똑같이 말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나에 대해서 말하는데 무엇과 동일하게 말하라는 것일까요?
제가 하루는 기도를 하다가 놀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느꼈던 감정과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일을 가지고 회개 기도를 하는데, 제가 저도 모르게 그때 느꼈던 생각과 마음과는 조금 다르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저의 죄와 잘못을 어떻게든 조금 미화하려고 하고, 덜 나쁘게 말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라고 하는 기도인데도 저 자신을 변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또 다른 내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일하게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나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9절의 내용을 보면,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십니다. 동일하게 말해야 용서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용서는 내가 지은 죄가,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있었던 일은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일을 문제 삼아 영벌에 처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회개하고 나서 마음이 후련해지고 마음이 찢긴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가 사람을 깨끗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정말 우리의 영을 깨끗하게 하시는 분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깨끗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셨는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면 그러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 사람이 깨끗하게 되었는지는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던 사람이 기도하기 시작하고, 예배를 자주 빠지던 사람이 예배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모이는 것을 싫어하던 사람이 모이는 일에 열심을 내고, 전도할 생각이 없던 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전도하게 됩니다.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이 깨끗하게 된 증거입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기를 원하고 성장하기를 원하신다면 회개하면 됩니다. 회개하면 우리 모든 성도가 선한 일에 열심을 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회개함으로 형제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깨어 회개하는 삶
그 사람의 기도는 그 사람의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회개는 우리가 깨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잠들지 않았을 때는 잠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자는 동안에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에는 무엇이 술 취한 것인지 알지만, 술에 취해 있을 동안에는 술 취한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이와 같이 깨어 있는 사람만이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고 그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죄를 인정해야 죄 사함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깨어서 회개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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