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릴 적 시절이 문득 떠오를 때면 ‘그때는 왜 그랬을까?’ 하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내가 국민(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순박한 얼굴을 하고 감히 선생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도, 목소리를 크게 낼 수도 없이 부끄러움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혹여 시비가 붙으면 순박한 얼굴은 어디로 가고 사나운 표정과 험악한 말로 자기 본성을 나타내었다. 그 누구도 상대에게 지지 않기 위해 더 험악하고 더 센 욕을 찾아 날리며 급기야는 몸싸움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한번은 우리 동네 친구들과 다른 동네 친구들이 서로 집단 싸움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내 생애 그렇게 죽기 살기로 열심히 싸워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쩌자고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싸웠는지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온다. 그렇게 뒹굴며 자라 몸집이 커지고 중학생이 되니 자연스럽게 더 이상 몸싸움은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집에서 4km쯤 떨어져 있는 삼계면 소재지에 있는 곳이었다. 삼계에는 우리 동네엔 없는 점빵(소매점)도 두 개나 있고, 우체국도, 농협도, 교회도 두 개나 있는 곳이었다. 학교도 국민(초등)학교보다 크고 선생님도, 학생도 많은 곳이라 조그만 동네에서 올라온 나로서는 주눅이 들만도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주눅이 들기는 커녕 ‘누군가 시비를 걸기만 걸어봐라 가만 안 놔둘테다’라는 마음으로 다녔던 것 같다. ‘무식이 용감하다’라는 말이 그 당시 나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당차고 무식한 나에게 친구들은 오락부장을 시켜주고 학교에서는 규율부장을 시켜주어 거침없는 학교생활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고 얼굴이 저절로 붉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2학년쯤 되었을 때 체육시간에 운동장 귀퉁이에서 풀을 뽑던 친구들이 패가 갈리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친구들이 무슨 다툼을 하는지 궁굼해 슬쩍 옆으로 다가가 엿들어 보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야말로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옥신각신 다투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삼계에는 교회가 딱 두 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삼계에 들어서는 초입에 참예수교회가, 하나는 삼계가 끝나는 지점에 장로교회가 있었다. 그러니까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친구들 패와 장로교회에 다니는 친구들 패가 서로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같은 하나님을 가지고 교회가 갈리어 다투는 것이 마치 내가 초등학생 때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목숨 걸고 싸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려 보겠다는 생각으로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날 어느 교회가 옳은지 각 교회를 한번씩 가보겠다는 약속을 하고 싸움을 말렸던 기억이 난다. 

 약속대로 친구들을 따라 참예수교회에 먼저 가게 되었는데 그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는 처음부터 ‘참예수교회’라는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고 좋았다. 지금도 이 이름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자랑스럽지만 말이다. 그러나 교회이름이 좋은 것과 반대로 예배당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예배시간 내내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았고, 모두 깨끗하고, 순수하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나만 더럽고, 추하고,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예배를 마치고 방언기도를 하는 걸 보고 너무 놀라 슬그머니 도망가야할지, 나도 따라서 흉내 내야할지 기도 시간 내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방언기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상한 의심이 바로 사라졌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후로 학교에서 맨날 만나던 교회 친구들이 이제는 달리 보였다. 같이 자란 동네 친구들보다 오히려 교회 친구들 앞에서의 행동이 왠지 더 조심스러웠다. 물론 참예수교회를 한번 발걸음 한 뒤로 ‘여기가 맞다’라는 뭔지 모를 막연한 느낌에 장로교회는 가볼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에 장로교회는 가지 않았다. 

 그렇게 삼계교회를 뭣도 모르고 다니다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로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나는 참예수교회는 삼계에만 있다는 생각에 교회를 찾아서 다닐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친오빠가 “삼계에서 네가 다니던 참예수교회가 여기 전주에도 있더라” 라고 얘기해주었다. 나는 농담하지 말라고, 믿지 않겠다고 했는데 오빠가 집에서 가까우니 걸어가서 확인해 보라고 얘기했다. 오빠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보니 정말 참예수교회가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 당장에 교회에 들어가 보았다. 그 후로 전주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어느 샌가 교회와 나와의 이질감이 사라지고, 나의 객기도 사라지면서 고등학교는 정말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다녔던 것 같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히2:11-12)’

 교회에 들어오니 교회에서는 남자를 형제라, 여자를 자매라 칭하며 불러 주었는데 처음에는 얼마나 형제/자매라는 호칭이 어색 했던지 그냥 이름을 불러주거나 누나/언니/동생으로 불러 주는 것이 친근감 있고 좋았다. 그러나 말씀을 깨닫게 되고 부터는 형제라 칭함 받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좋은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 맨 처음 참예수교회에 들어섰을 때 나는 나의 더럽고 누추한 느낌에 한없이 부끄러워 주눅 들어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누추하기 그지없던 내가, 무식하기 그지없던 내가 어찌 감히 주님 앞에 설 수 있을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는 그 말씀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은혜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나 같은 사람을 형제라 불러주시는 예수님께 감사하며, 그러한 주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항상 나 자신을 살피며 말씀에 비추어 살도록 힘써 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