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예수 이름으로 간증 드리겠습니다. 

무슨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생각하면서 지난날의 제 신앙여정을 되돌아보니 주님의 은혜를 너무 많이 받은 사람이로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여정 가운데 돌이켜 보니 저의 신앙생활은 그저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제가 믿음이 없어서 선택한 일이었기에 같은 믿음을 가지고 가정이 출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늘 참아야했고 가족을 믿음의 길로 이끌기 위해 가슴이 애려오는 아픔을 느끼며 눈물의 기도를 드려야 했고 제사 문제 해결을 위해 늘 괴로워했고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늘 나의 생각과 마음을 아시고 기쁠 때나 슬플 때 믿음이 연약해져 있을 때 그리고 외로울 때도 언제나 제 곁에 계셔서 위로해 주셨고 힘을 주시고 확신을 주셨습니다. 

여기까지 지켜주신 주님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잘것없고 한없이 부족한 힘없는 저에게 나타내 주신 주님의 능력과 체험한 일을 간증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제가 믿게 된 과정과 믿음의 확신과 성령 충만 주신일 그리고 소원을 들어주신 일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믿게 된 과정과 성령 받은 체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2016년도에 돌아가신 큰언니로부터 참예수교회 진리를 전해 들었습니다. 큰언니는 잠시 쌍치에서 살게 되었는데 최경순 모친 언니로부터 밭을 메면서 참진리를 받았다고 해요. 몇 년 사시다 다시 대전으로 오시게 되었는데 큰언니 가족은 물론이고 친정 쪽으로 아버지, 어머니, 오빠 동생 작은 언니 큰올케 모두를 전도해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저도 그중에 한 사람인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교회에 가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간증해준 자매님들의 믿음 좋은 부모님들이 계신 것처럼 제 곁에는 언니가 계셨고 언니는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해 주셨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간증을 들려주셨어요. 그 간증 중의 한 가지를 얘기하고 싶어요. 하루는 언니가 도토리를 따러 산에 가게 되었는데 도토리 따는 재미에 계속 가다 보니 방향을 잃고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답니다 첩첩산중에서 해는 점점 어두워져서 무서운 마음이 들고 집에 가야 할 길을 몰라 막막했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길을 환하게 비추어 주시는데 땅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까지 보일 정도로 환하게 비추어 주셨어요. 그래서 그 빛을 따라서 집에까지 무사히 오게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신 걸 듣고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심을 알고 참 신기하고 놀랄 뿐이었습니다. 

저는 언니 말에 순종해 참 진리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부사동 쌀집 2층에 있는 교회로 가게 되었는데 배장로님이 계실 때였습니다. 

기도 시간에 방언 소리가 어찌나 듣기가 좋은지 아! 나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1977년 6.5 영은회 때 허수진 목자님께서 세례받고 바로 교회 와서 안수기도 때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데 어디서 뜨거운 바람 같은 기운이 머리에서부터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잠시 혀가 자유를 잃고 나 자신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이 혀에서 굴려 나오듯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가벼워 날아갈 듯했고 손은 둥근 원을 그리면서 자꾸만 돌기 시작했고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성령 받은 그 자체는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성령을 받고 나와 보니 평소에 지나쳤던 2층 난간에 화분의 꽃과 나무를 보았을 때 어찌 그리 예쁘고 아름답게 보이는지요. 

또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도로에 가로수들이며 돌이며 모든 것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어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지금 머릿속에 그려보아도 모든 것이 새롭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귀한 잊지 못할 날로 기억이 됩니다. 

 

 1. 믿음의 확신을 주신 하나님 

세례를 받고 난 후 2년 뒤 1979년 여름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례, 성령만 받았지 아주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의 상태에서 믿음에 순종하지 못하고 이방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민이 아빠는 7남매의 맏이로서 시부모님은 두 분 안 계시고, 시누이 5명중 막내 시누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제일 큰 시누이만 결혼했고 시동생과 시누이 4명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언니는 어떻게 믿지 않는 가정에 가서 믿음을 지키려하느냐며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긍휼의 마음을 주셨을까요? 왠지 너무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내가 꼭 구원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결심했습니다. 배 장로님과 사모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결혼식 전 날 장문의 편지를 썼습니다. 이 사람 제가 꼭 구원시키겠다고 약속의 편지를 드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믿음도 없으면서 어떻게 구원시키겠다고 다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힘을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 삼천포로 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시댁 작은아버지가 운영하는 사료공장이 있었는데 한 분야를 맡아달라고 부탁을 받고 가게되었습니다. 

그곳은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가지 못하고 안식일이면 혼자 찬송, 기도, 말씀 읽고 교회가 너무 그리웠습니다. 가까운 교회를 찾아 가봐야지 하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수민이를 갖게 되었고 수민이가 태어난 지 8개월이 되었을 때 짜장면집을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남편이 부모 없는 가정에 7남매 장남인데다 대전집에는 시누이 둘이 살고 있었고 학교에 다니니 생활비를 보내주어야 했습니다. 

월급을 가지고는 힘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민수를 낳고 점점 하루하루 몸도 마음도 지쳐 하나님 자녀처럼 살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도 못하고 신앙생활도 하지 못하면서 6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믿음은 아는 만큼 믿는 만큼 순종하게 되어있는데 어린아이와 같은 너무 어린 신앙이였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저에게 하나님은 고통을 주셨습니다. 이유 없이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코가 뒤로 넘어가 힘이 들었고 민수가 첫돌 때 옆집에 사는 사람의 부주의로 인해 끓는 물에 등과 다리를 데었어요. 치료과정에서 가려워서 누워 잠을 못자니까 제가 등에 업고 자야만 했습니다. 

또 얼마 후 둘 다 기침을 하기 시작했어요. 기침이 한번 나오면 멈추질 않고 계속 나오면서 얼굴과 눈이 빨개지면서 곧 어떻게 될 것 같았습니다. 저녁에는 더 심해져서 잠을 잘수 없었습니다. 

자연 민간요법이며 좋다는 것 다 써보았지만 듣질 않았어요. 

믿음이 없어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도 하지 않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는 주님의 말씀도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고난이 어디서 무엇 때문에 왔는지 깊이 생각지도 못했고 나를 향한 주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얼마 후 대전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큰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목자님을 모시고 심방을 오셨습니다. 

너 이제 대전에 왔으니 교회 나와야지 하셨습니다. 수민 아빠는 교회에서 오신 것을 못마땅해 하시며 큰집을 간다고 피해 갔다오더니 애들은 절대로 교회에 데리고 가지 말하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다니려면 혼자만 다니라고 결혼하면 교회 나간다는 약속은 다 어디로 가고 애들까지 못 가게 하나 생각하니까 마음이 무너져 내려앉아 눈물이 나서 한참을 울고 나서 여기서 내가 넘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것 다 들어주고 양보해도 애들 교회 다니는 일만큼은 절대 지지 말자 다짐했습니다. 내가 오씨 집안에서 나가라면 나오는 한이 있어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의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후 영은회 때 아이들 세례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삼천포에서 아팠던 기침이 점점 그치게 된 걸 느꼈습니다. 

수민이 아빠는 믿음이 들어오지 않았을 때는 맨 마지막 쓴 민간요법이 나았나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런데 믿고 나서 제가 얘기했어요. 아들 기침이 세례받고 나았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세례 바쳤으니 하나님 자녀답게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자 역할을 잘해야되는데 고민이 되었습니다. 애들을 데리고 교회 다니는 게 눈치가 보이고 한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구원시키려고 처음에 품고 꿈꾸었던 내 다짐은 점점 힘을 잃어가는 것 같아 이건 아닌데 하면서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자신과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내 괴로움을 아셨고 내 마음을 아셨기에 제 곁에 오셔서 확신을 주셨어요.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동산에 가게 되었는데 중앙에는 호수가 있어 잔잔하게 물이 흐르고 바위틈에는 형형색색의 아주 예쁜 꽃들이 피어있고 푸르른 나무가 있고 새들이 지저기고 색깔이 너무너무 아름답고 선명했습니다. 거기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인자한 모습으로 제 곁에 오셔서 위로해 주시는 것 같은 정말 평화로운 장면이었어요. 그림동화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너무 좋아서 거기 머무르고 싶었어요. 

아 이곳이 천국이구나. 여기서는 근심 걱정 아무 일 없이 오로지 기쁨으로 충만해 있을 것 같은 그림 같은 장면이었는데 깨고 나서 너무 아쉬웠어요. 그 장면들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찬송 499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찬송 가사가 구구절절 네 마음에 감동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가사 중에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하는 말에 더더욱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 기쁨을 고이고이 혼자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힘들 때 그 찬송을 부르면서 주님께서 나와 동행해 주시는 걸 느끼면서 믿음의 확신과 믿음의 전진을 할 수 있었습니다. 

 

2. 성령의 충만을 주신 하나님 

삼천포에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후에 영은회 참석해 기도 시간에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을 다시 한번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불덩이 같은 게 내 안에 들어와 몸은 가벼워 날아갈 듯했고 손은 원형을 그리며 진동하기 시작했고 혀는 이상하게 움직이며 방언을 하며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처음 성령을 받을 때와 똑같은 걸 체험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믿음이 연약한 저에게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나타내 주셨던 것 같아요. 너무 기쁘고 신기하고 감사하고 그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체험이 있는데요. 

또 몇 년 후에 학교 앞에서 분식점을 했을 때입니다. 저녁 예배 참석하기 위해 손님이 와도 시간이 되면 문을 닫고 피곤하여 지친 몸을 이끌고 교회 와서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듣다 보면 아! 참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늘 들었습니다. 

말씀이 감동되어 깨달음을 주셨고 항상 주님이 함께해 주심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화요일 저녁 예배 때 기도하는데 다른 때와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누가 제곁에 오셔서 안수를 해주시는 것 같아 눈을 살며시 떠보면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기도 시작하는데 혀가 이상해지면서 다른 방언 소리가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집에 오셨는데 금요일 날 저녁에 가서 예배 시간에 기도하는데 평소와 다르게 다른 방언 소리가 나오면서 성령 충만을 느꼈습니다. 

옆에 있는 자매님이 기도 소리가 바뀌었네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하면서 너무 기뻤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연약함을 아시고 성령 충만으로 새 힘을 주심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3. 저의 소원을 들어주신 하나님 

저는 남편과 같이 가족이 교회에 나오는 자매님들을 보면 너무너무 부러웠습니다. 저 자매님들은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을까? 

저도 남편과 같이 교회 다니는게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민이 아빠는 마음을 열지 않았어요. 교회 다니는 집안 어른들 보고 실망한 부분이 많아서이며 동생들이 참예수교회는 토요일 날 간다고 이상한 교회 아닌가 하기도 하고 장남이다 보니 동생들을 다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화목이 깨지면 안 되니까 더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삼천포에서 잠깐 다니러 대전집에 왔을 때 시작은 어머님이 절 전도하신다고 부흥회에 참석하라고 짐을 싸들고 오라고 운전기사를 보냈습니다. 갓 시집온 제가 뭐라 말도 못하고 새벽기도부터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어머님은 권사님이셨는데 하루는 제게 너가 다니는 교회는 세례를 어떻게 받느냐고 물어보시길래 그때 저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분명 성령께서 함께 해 주셔서 참예수교회서 베푸시는 세례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주 예수님 이름으로 받아야하고 흐르는 물에서 머리를 숙이고 온몸이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한다. “성경대로 하지 않는 교회는 다 틀린 거고 이단입니다”라고 했더니 나중에 시작은 아버님께서 저를 불러 어디 어른 앞에서 당돌하게 말대꾸를 하는냐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혼을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어머님은 이런 있었던 일을 수민 아빠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이단 교회인가보다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광야 같은 곳으로 저를 내몰아서 마음을 가난하게 해 주셨습니다. 시장통에 집을 얻어 건강식품 장사를 하려고 집 앞에 가 건물을 짓게 되었는데 동사무소에서 나와서 철거를 하라고 했습니다. 집주인이 자기 땅이라고 했는데 동에서는 아니라고 해서 결국 하지 못하고 돈을 받아 나와야만 하는데 주인은 억지소리를 하고 해결이 잘 안되어 하루하루 지내는 일이 가슴 두근거리며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방은 발을 뻗으면 벽이 닿았고 화장실은 하늘이 보이고 부엌에는 수도가 없어 하루하루 사는 게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다가와 주셨습니다. 뜻밖에 하루는 둘째 시누이가 와서 이런 환경에 처해있는 저를 보고 너무 안쓰러워하면서 오빠도 언니 따라 교회 가주는 게 어떻겠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시누를 통해 제 소원을 이루어 지시려는구나 생각하니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사를 하고 하루는 그때가 결혼 10년이 되었던 해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나가겠다고 하는 거였습니다. 그동안 저의 행동을 지켜보았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이상한 교회가 아닌 것 같아 마음의 결정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흘렸던 슬픔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변해 저는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고 아무 근심 걱정이 없을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내 소원을 들어 주셨구나 너무 감사했습니다. 

 

4.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  

사람은 늘 걱정하고 만족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수민 아빠가 믿음 안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에는 그저 교회만 나오면 모든 근심 걱정이 없이 편안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고 나니 왜 이리 눈에 거슬리는게 많아졌습니다.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이러면 안 되고, 저러면 안 되고 계속 제가 지적을 하면서 서로 마음 상하는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참 마음이 편하질 않고 신경성으로 음식을 먹으면 매일 체하고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너는 완전하느냐? 

“니가 무엇인데 그 사람도 내 피로산 자녀란다”하셨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아직 어린 아이 같은 신앙인데 빨리 성숙해지길 바랬던 마음이 앞서 너무 성급했구나, 지혜가 부족했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내 신앙의 기준에 맞추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참고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구나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점차 자라나기를 기도로 도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주신 깨달음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평안은 세상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것임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평안을 주신 하나님에 대해 한 가지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2003년 86세에 어버이날 막내아들 가족이 와서 맛있는 음식을 드시고 손자 재롱도 보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인사하고 떠나는데 바로 쓰러져 피를 토하고 손쓸 방법도 없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연락받고 너무 놀라워 울기만 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 달 동안은 잠을 못 자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곤 했습니다. 어머니의 영혼은 어찌되었을까? 교회와서 예배를 드려도 기도를 드려도 머리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풍선이 빵빵해져 터질 것 같은 그런 상태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왜냐면 어머니는 큰언니 믿음으로 세례만 받으신 상태였으니까요 사실 저는 어머니가 언제 어디서 세례를 받으셨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총무 일을 하면서 대전교회 초창기 1961년부터 수세 수령자 등 교적부 정리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1982년도에 제가 삼천포에 있을 때 대전교회에서 받으신 것을 확인하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어머니는 교회가 없는 시골에서 오빠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목자님이 심방을 오시면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시고 정성스레 식사를 준비해 드렸으며 그리고 영은회 때 한 번씩 교회를 참석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시지만 동네 사람들이 교회 얘기하면 우리 딸들이 다니는 교회가 진짜 참 교회라고 할 정도셨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생활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제가 걱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부족한 가운데 판단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교만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하에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인데 왜 걱정을 했나 싶었습니다. 이렇게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어느 날 밤 꿈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종이에 151 숫자를 보여 주셨습니다. 자다가 깨어 생각을 하니 너무 신기한 생각이 들면서 찬송가 생각이 났습니다. 151장을 펴보았습니다. 

옛날에는 총회에서 발행한 찬송가를 보았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제목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아팠던 머리가 싹 사라지는 걸 느끼며 마음의 평안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체험하고 감사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또 몇 년 후에 예배 시간에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듣다 보면 가끔씩 어머니를 생각하고 또 걱정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난 왜 그럴까? 하나님께서 ‘너 근심 걱정말아라’는 말씀을 듣고도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나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또 한 번의 꿈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꿈속에서 어머니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마음에 안심이 되고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느끼며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싹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이심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생각해보니, 한 사람 구원시키기 위해 다짐했던 일도 믿음의 길로 인도해주신 일도 때마다 저에게 힘을 주시고 확신을 주신 일도 또 간증은 못했지만, 청천벽력 같은 일을 만났을 때도 또 남편을 떠나보내는 슬픔까지 저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과정 중에 하나님의 섭리와 세심한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늘 동행해주셨고 위로해 주셨고 마음의 평안을 주셨고 큰 고난 중에도 늘 감사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은혜였습니다. 

또 고난 중에도 주 안에서 착한 사위를 보내주셨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며느리를 보내주신 것 하나님의 고귀한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한동안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애워싸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되어 은혜의 눈물을 흘리곤 하면서 또 생각하니 영원 창세 전에 나를 택해주시고 하나님 백성 삼아주셔서 은혜 안에 들어왔다는 것이 기적이고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생각합니다. 

준비하는 동안 내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계속 남아있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해주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