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사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사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사1: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사1: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사1:7)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사1: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사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주다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슬프다’라고 번역되어있는 부분은 원래 히브리어로 ‘호이’라는 단어이다. 우리나라에서 장례식에서 아이고~ 아이고~ 같은 곡소리이다. 가슴이 저며 오는 듯한 심정으로 절로 나오는 탄식 소리이다.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패역해서 죽음으로 달려가는 그의 자녀들을 보시면서 부모의 심정으로 안타까워하시는 부분이 바로 이사야서의 시작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슬픈 울음소리를 내실만큼 슬퍼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 1:2) 하나님께서 목숨처럼 사랑했던 자식 된 남유다가 하나님을 거스르며 거역하는 그 고통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통곡을 하고 계신다.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떠나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범죄, 허물, 행악, 부패가 아닌가. 모든 죄의 시작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열매가 모든 죄와 악이 아닌가. (롬 1:28)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 기회이다. 위기이지만 동시에 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심판 속에서도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숨어있다.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자식’이라고 표현하고 계신다는 점이 더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아들아, 딸아 이렇게 불러주시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의 보살핌과 치료를 받아야 할텐데, 오히려 하나님을 거절하고 더 큰 죄를 지으며 나갔다.

(사 1:9)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없애신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남은 자’를 두셨다. 남은 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재건을 꿈꿀 수 있었다. 비록 적은 수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던 사람들을 살려두셨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끝없는 사랑을 우리도 동일하게 받아 누리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셨고, 끝까지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는 그의 자녀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
우리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지으며 산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를 기다리시며 사랑해주신다.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 최후의 심판 전까지 하나님은 언제나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소망의 끈을 끊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그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기원 드린다. 할렐루야.

 

https://youtu.be/UzpyZIfthC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