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제목]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본문말씀] 눅 21:34-36
[설교자] 정호민 목자님
[설교일] 2025. 02. 15. 토. 오전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무엇을 조심하라고 하셨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왜 조심하라고 하셨을까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교훈을 삼고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우리는 마음이 둔해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마음이 둔해진다’라는 말의 원뜻은 ‘무거운 짐을 지우다’라는 뜻입니다. 즉, 마음이 무거워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거워져 둔해지는 것입니다. ‘둔하다’라는 것은 사전적으로 ‘동작이 느리거나 굼뜨다’는 의미도 있지만, ‘깨우침이 늦다, 감각이 예리하지 못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둔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 6:9-10)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마음이 둔해진 백성들의 특징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에서 ‘둔하다’라는 말은 ‘살찌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마음이 살쪄 무거워졌다는 것인데, 그렇기에 마음이 살쪄 둔해진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왜 마음이 둔해지는 것을 조심해야 할까요? 심판의 날이 덫과 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쥐와 같은 동물은 덫에 걸리기 직전까지 이것이 덫인지 인식하지 못합니다. 덫에 걸린 이후에야 내가 덫에 걸린 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아무리 발버둥을 치더라도 벗어날 수가 없고, 돌이킬 수 없습니다.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그날은 지구 위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날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재림하시어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마 25:31-33)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예수님께서는 다시 세상에 오실 때 양과 염소를 구별시킨 것처럼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스스로 조심하지 않고 마음이 둔한 사람에게는 뜻밖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의 날이 덫과 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회개하고 돌이키겠다 한들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무엇이 우리 마음을 둔하게 만들까요?
1) 방탕함과 술 취함
‘방탕하다’는 것은 사전적으로는 ‘주색잡기에 빠져서 행실이 좋지 못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원어로 보면 머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 사람은 술에 취할 때 정신을 잃고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게 됩니다. 이처럼 방탕함과 술 취함은 항상 같이 묶어 언급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롬 13:13, 갈 5:21).
여기서 말하는 술은 세상의 쾌락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술에 취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각종 쾌락에 빠져서 내 욕심대로 무절제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둔해져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결국 심판의 날을 덫과 같이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이런 사람들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눅 17:26-30)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30.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말씀을 보시면 노아의 때와 소돔과 고모라 멸망의 때의 사람들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심판 직전까지 자기 욕심대로 방탕하게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생활의 염려
(마 6:25-34) 말씀을 보면 27절에 염려함으로 염려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세상에 염려, 걱정, 근심은 우리가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방해합니다.
(마 13:7, 22)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우리가 아무리 많은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속에 세상에 대한, 생활에 대한, 삶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가득하다면 그 말씀이 도저히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걱정, 근심의 기운이 커서 말씀이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마 6:26)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작은 새도 다 기르시는데 하나님의 귀한 자녀인 우리는 어떻게 하시겠느냐 말씀하시며, 그렇기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벧전 5:7-8)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우리가 계속 걱정만 하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둔해질 것입니다. 마귀는 그 틈을 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에게 달려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탕함과 술 취함, 생활의 염려로 인해 우리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조심한다고 하지만 어느새 염려하고, 세상에 빠진 나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막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오늘 본문의 36절 말씀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을 같이 보시면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하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도의 선순환입니다. 우리가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에 힘쓰면 영적으로 무감각했던 내 영혼이 깨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힘으로 깨어서 더욱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바라옵기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므로 조심하고 경계하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으로 함께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