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처음 간증을 권유받았을 때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받았던 것 같은데

주제가 하나님은 나의 생명이라는 알고 나서부터는 마음이 엄청 무거웠던 것 같습니다.

나의 생명인데 가장 어린 대학부에서 간증하려니 처음에는 이게 맞을까도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 뜻이 있음을 믿고 담대히 해보겠습니다.

저는 제 짧은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낀 순간을 간증하겠습니다.

이 시간 간증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간증으로 제가 아닌 하나님이 나타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성경구절 읽겠습니다.

“내가 본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20절

 

  1. 간증에 대한 배경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목자님 가정에서 태어나서

모태신앙으로 어렸을 때부터 교회와 가까이 지냈습니다.

우리 수원교회 아동부처럼 교회는 저의 놀이터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정교육도 조금은 많이 강하게 받았습니다.

7살부터 매일 성경을 읽었고 초등학생 때 성경 통독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말 신앙적인 아이구나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심방이나 외출로 성경 읽기를 우리 삼 형제에게 맡길 때면

저희는 일부러 빠르게 읽거나 안 읽었는데 읽었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제가 신앙 안에서 자랄 수 있던 이유는 가정의 영향이 컸습니다.

저에게 가정은 신앙 안에서 큰 울타리였고 안식처였습니다.

이런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모든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바로 제가 가정을 떠나 남자고등학교 기숙사에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목자님 가정은 당시에 3년마다 교회를 옮겨야 해서

제가 중학교는 안양에서 보냈는데 고등학교를 안양에 진학한다고 하더라도

복잡한 과정과 절차에 따라 목자님이 이동하신 지역으로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 끝에 기숙사로 가서 이런 복잡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처음 저는 기숙사에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걱정보다는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맨날 집에서 사모님의 스파르타 훈련을 받아온 저였기에

‘자유 시작’이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그 환상은 1주일도 안 돼서 깨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 빨래나 청소를 다 해야 했고,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생존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학교에 처음 입학 했을 때는

후배가 선배를 보면 무조건 인사해야 하고 인사를 하지 않으면

밤에 기숙사에서 얼차려를 주는 등의 악습이 있었습니다.

저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이런 부분은 적응하면 알아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인사 한 번 더 하면 되고 빨래나 청소는 처음에 너무 힘들었지만,

점점 실력이 느는 게 보였기에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1. 고등학교에서 처음 맞이한 안식일 문제

 

하지만 정말 문제는 신앙 문제였습니다.

기숙사 학교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다녔던 학교는

1학년들이 무사히 적응할 수 있도록 개학하기 첫 주 전에 신입생 캠프를 하였습니다.

근데 문제는 일주일 내내 토, 일요일까지 진행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상 학생은 전원이었고 열외나 그런 것도 하나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 소식을 들은 순간 심란해졌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살면서 처음이라 당황스러운 나머지

바로 부모님께 지금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쭤보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진정하라고 말씀해 주셨고,

아침에 기도하고 말씀 묵상을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개학 전 안식일은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는 대부분 친해지길 바라는 프로그램으로 재밌는 레크레이션을 진행합니다.

친구들은 좋다고 웃고 깔깔대는데

저는 이걸 즐겨도 되나 시험이 들면서 혼자 심각해진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든 안식일을 보내고 일정이 마무리된 후 저는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저의 상황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여기서 정신 못 차렸다간 내 신앙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1. 안식일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

 

저는 개학이 되고 바로 안식일을 지킬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찾아본 결과 외출은 토요일 오후부터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전 예배는 못 드려도 학생부 예배는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저는 반드시 오전에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방책을 더 찾았습니다.

먼저 담임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어떻게 하는지 여쭤보았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1학년 부장 선생님한테 말씀드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숙사 사감 선생님께서도 1학년 부장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두 다 한목소리로 1학년 부장 선생님을 이야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학년 부장 선생님은 교장, 교감 다음의 서열이었고

학교에서 가장 깐깐하고 원칙주의자신 걸로 유명하셨습니다.

근데 저는 이제 첫 주를 맞이하는 새내기였기에 그런 데이터 없이

진명이와 다짜고짜 찾아가서 우리 안식일 믿는데 종교활동으로

토요일 오전에 외출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NO!” 였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혼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교회를 너무 가고 싶은 마음에 설득보다는

일방적인 요구를 했는데 부장 선생님으로서는 이제 막 새내기가

원칙을 어기고 가야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정말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당시 그렇게 혼나고 돌아오는 길

저희는 정말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에 부장 선생님께 다시 가서 부탁드렸습니다.

근데 어떤 대답이 돌아왔을까요? 그래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날마다 찾아갔는데도 안 되었습니다.

안식일은 다가오고 이번에도 안식일을 못 드릴 것 같은 생각에 좌절과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금요일도 어김없이 야간 자습을 하고 11시쯤 끝나는데

10시쯤 부장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반 포기 상태였고

혼내시려고 그러나 생각했습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부장 선생님은 저에게 흰 종이 하나를 저에게 딱 꺼내셨습니다.

그러고는 3년 외출증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미리 사감 선생님께도 말씀드렸고 이거 있으면 토요일에 아침부터

외출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직도 그 외출증을 받았을 때 감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자신이 30년 넘게 근무하면서 토요일 아침을

그것도 첫 주부터 매주 외출하는 학생은 너희가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앞으로 학교생활을 지켜본다고 하셨습니다.

약간 경고의 메세지도 있었지만 저는 마냥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사건이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받으시고 함께하신 순간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부장 선생님이 너그러우신 분이시냐? 아닙니다.

깐깐한 것으로는 제일가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제가 신용이 좋은 학생이었냐? 아닙니다.

1주일 된 학생인 데다 첫 주부터 체계의 불만을 가지고 따지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하셔서 안식일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사감실에도 이어집니다.

토요일 오전에 가는 외박자는 무조건 보호자가 와야 밖으로 보내줍니다.

저도 오전에 외출을 가야 하기에 보호자가 와야 나갈 수 있는 규정은 피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모님은 안산에 계시고 천안교회와는 차 타고 20분이나 가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분이 바로 이남찬 목자님이셨습니다.

목자님은 당시 저의 학생부 교사셨습니다.

당시 학교 규정에 핸드폰은 사용할 수 없고

전화번호를 외워 인터폰을 사용해야 했기에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이남찬 목자님의 번호를 받아 연락을 드렸습니다.

당시 시간은 11시가 넘었고, 전화를 못 받으면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바로 받아주셨고 안식일 8시 30분에 와서 저희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 이후에는 규정이 좀 풀렸는데 코로나 이후에 다시 강화되면서

천안교회 형제, 자매님이 저희를 데려다주시는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매번 신세를 지는 게 너무 감사했지만, 죄송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 반쯤 지난 때에 청주에서 저의 친척이 전입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모부와 이모가 저희를 계속 픽업해 주시면서

고등학생 기간에 정말 순조롭게 안식일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저를 도와주신 분들 그리고 준비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학교생활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저는 고등학생이 돼서 화요일, 금요일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와이파이는 안 터지고 데이터도 없고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터지는 컴퓨터실에는

과제나 대회 준비 외에는 어떠한 사용도 금하도록 철저하게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행동을 하면 정말 좋으신 선생님은 한번 경고를 주시고 다음 뺏어 가시지만,

대부분의 선생님은 바로 기기를 뺏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압수당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말씀의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기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매일 아침이나 못하면 저녁에 했고, 기도는 오후 자습 끝나고 밥 먹기 전 10분 기도에 힘썼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태블릿이 생겨서

가족 밴드에 읽은 말씀을 3대지로 정리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기도할 때는 룸메이트에게 양해를 구하고 문을 잠그고 기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는 학교는 남고라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남고에다 기숙사라면 어떤 작은 독특한 거리가 생기면 바로 놀리고 비꼬는 특징이 있습니다.

속된 말로 남고에서 그런 독특한 사람은 먹잇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런 신앙적인 부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컨셉이냐?,

성경 읽는 시간에 문제를 풀었으면 한 등급은 올렸겠다는 등 여러 말로 비꼬았고,

아멘의 뜻을 모르는 친구들이 그건 어디서 들어왔는지

말끝마다 아멘 거리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참아야지,

아무것도 아니다 하였는데 이게 쌓이니까 정말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를 하며 제발 그만하게 해주세요.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어김없이 놀렸습니다. 역시 기도를 한다고 상황이 갑자기 역전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인내할 힘을 주셨습니다.

짜증 나고 지겨웠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고 인내하다 보니

친구들도 애는 진짜다 이러면서 더 이상 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순간이 있었는데 저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고,

하나님께서는 함께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냥 하지 말자,

안 하는 것이 편하지 않냐고 생각도 했지만 도우심을 느끼며 그 생각을 뿌리쳤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친구들에게 인정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친구들이 천안교회에도 몇 번 방문도 하였습니다.

 

 

  1. 결론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하시고 저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혹은, 환경을 통해, 능력을 주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우리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릴 돕기 위해, 우리와 함께하심을 느끼게 하시기 위해

보내준 사람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근데 저는 이것을 쉽게 지나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순간에는 그냥 지나갔는데 간증을 준비하면서 조력자에 대한 감사를

드리지 못한 것에 죄송하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함께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누군가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끼게 해주는

저와 수원교회 성도님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상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니께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