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제목]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롬 1:16)

[설교자] 정호민 전도자

[설교일] 2022년 4월 1일 (금) 안식일 저녁 예배

 

[본문말씀 : 롬 1 :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었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입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알고 있지만, 처음 예수님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와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 자라신 나사렛은 갈릴리 중에서도 정말 별 볼 일 없는, 작고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게다가 당시 ‘예수’란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고, 아버지는 평범한 목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참된 구세주로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우리를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줄 정치적인 구원자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으로 내몰았고, 주의 제자들과 교회까지 핍박합니다. 이때 사도 바울도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만나 회심했고, 예수를 핍박하는 자에서 예수를 전하는 자로 변화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 한 사람이 변한다고 해서 사회의 관념까지 모두 바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때 사회의 관념은 어땠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멸시하고 사도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은 비천한 모습으로 복음을 증거했다고 표현합니다(고전4:10-13).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택하셨습니까? 복음을 위하여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분명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어떻게 여기고 있나요? 혹시 복음을,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진 않았나요? 하지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당당히 외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요? 왜 복음 전하는 일에 자신의 목숨까지 걸면서 담대히 나아갔을까요?

 

(롬1:16) …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복음에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곧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은 어떤 의미의 구원일까요?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바로 죄로부터 건져주시는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왜 죄에 속하게 되었을까요?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성경은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그의 자손인 모든 사람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대가는 사망입니다. 그래서 죄인 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육신의 사망이 끝이 아닙니다. 사람의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십니다(전 12:14).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 의인은 영생에, 악인은 영별에 들어갑니다(마 25:46).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영생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그저 착하게 살기만 하면 의인으로 인정받고 구원 얻을 수 있는 걸까요?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지만 이미 죄인인 사람은 어떤 노력으로도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주실까요?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림으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은 우리가 부끄러워할 소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며 많은 사람에게 전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을 얻는 기쁜 소식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심으로,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과 같은 이방인까지, 즉 모든 믿는 사람이 복음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십니다(딤전 2:4).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은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라옵기는 우리에게 복음이 부끄러운 소식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기쁜 소식이 되길 원합니다. 이 복음에 하나님의 참된 구원의 능력이 있음을 믿고, 모든 사람에게 기쁨으로 전하는 우리 되길 이 시간 간절히 소망합니다.

 

글쓴이  :  황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