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아홉 살 때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전신마취에서 잘 깨어나지 못해 한동안 비몽사몽으로 지냈습니다. 며칠 뒤 정신이 들자 저는 답답하다며 선생님과 부모님께 빨리 내보내 달라고 졸랐고, 그렇게 일주일도 안 되어 중환자실을 나왔습니다. 주위에서는 다들 걱정했지만 저는 아주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의사 선생님이 “효수야, 너 다시 태어났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 하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저는 “어떻게 살긴요, 살던 대로 살아야죠“라고 대답했답니다. 어린아이다운 대답이었지만, 돌아보면 저는 그 뒤로 정말 그 말대로 살았습니다. 그 사이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말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중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제 믿음이 좋아서 지켜졌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1. 어릴 때의 수술

그 수술의 시작은 폐렴이었습니다. 폐렴에 걸려 다니던 병원에서 가슴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평소대로라면 원래 계시던 소아과 선생님이 사진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 그 주에 부산의료원 소아과 과장님 한 분이 딱 일주일 동안 그 병원에 파견을 나와 계셨고, 저는 그 일주일 사이에 그분께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사진 속에서 아주 작은 점 하나를 찾아내셨습니다. 전에 같은 병을 본 적이 있었기에 알아볼 수 있었던 그 점은 종양이었습니다.

전문 병원으로 옮겨 정밀검사를 해 보니 종양은 밤톨만 한 크기였습니다. 병원에서는 아이가 어리니 흉터가 적게 남도록 작은 구멍만 내서 수술하자고 했습니다. 저를 생각한 좋은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신 뒤로 어머니의 마음이 이상하게 불안하셨다고 합니다. 설명도 다 들었고 의료진도 좋았는데, 그냥 마음이 놓이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그 마음을 말씀드리자, 병원은 날짜까지 잡아 둔 수술인데도 붙잡지 않고 오히려 부산 백병원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백병원에서도 처음에는 다른 선생님이 집도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수술을 며칠 앞두고 집도의가 부산에서 심장 수술로 이름난 흉부외과 원장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원장님은 사진을 보시더니 작은 구멍으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종양이 사진보다 크면 그 안에서 손을 쓸 수 없으니 옆구리를 열고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어린 마음에도 죽음이 무서웠습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천국에 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습니다. 수술은 한 시간으로 잡혀 있었고, 한 시간을 넘기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록 수술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열어 보니 사진에서 밤톨만 하던 종양이 아기 주먹만 하게 퍼져 심장에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10센티미터로 잡아 두었던 절개는 결국 15센티미터까지 늘어났습니다. 처음 계획대로 작은 구멍으로 들어갔다면 그 자리에서 큰일이 났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종양을 찾지 못했다면 저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1. 미국에서 난 교통사고

그렇게 자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한국에서는 운전대를 잡아 본 적도 없던 저는 미국에 가서야 처음 운전을 배웠습니다. 그 무렵 집안 사정으로 생활비와 학비가 모자라,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량이 제 차 옆을 들이받았습니다. 차는 범퍼카처럼 튕겨 도로 밖으로 나갔고, 저는 5분쯤 정신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찾아온 것은 살았다는 안도가 아니라 두려움이었습니다. 제 나라도 아니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제 차도 상대 차도 폐차해야 할 만큼 부서졌는데, 유학생이던 저는 사고 하나로도 신분에 문제가 생겨 쫓겨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학 초기라 영어로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습니다. 정말로 제 인생이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은 하나씩 풀려 갔습니다. 걱정했던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저조차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드러났습니다. 사고가 나기 한 달 전에 자차 보험에 가입해 두었던 것입니다. 원래는 없던 보험이었는데, 친한 형이 자차 보험은 무조건 들어 놓으라고 해서 그 말대로 해 둔 것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차를 폐차하고도 손해를 보기는커녕 오히려 남는 쪽이 되었습니다. 그때 받은 보험금으로 부족했던 생활비와 학비까지 메워, 휴학하지 않고 공부를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형의 말 한마디에 들어 둔 보험이 한 달 뒤의 그날을 위해 그 자리에 놓여 있었던 셈입니다.

 

  1. 야구공 사고

그다음 일은 아직 미국에 있던 시절, 친구들과 공원에 갔을 때 일어났습니다. 친구들이 경식 야구공으로 캐치볼을 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던진 공이 그대로 날아와 제 이마를 정통으로 맞혔습니다. 빡 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고, 코피가 쏟아졌습니다. 피가 너무 많이 나서 큰일이 났다 싶어 미국 응급실에 갔지만, 치료비만 많이 나왔을 뿐 딱히 할 수 있는 치료는 없었습니다. 저는 급히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한국에서 검사해 보니 오른쪽 눈썹뼈가 함몰되어 있었습니다. 눈썹뼈는 사람 몸에서 가장 단단한 뼈 가운데 하나라서, 그것이 무너졌다는 것은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조금만 아래를 맞았으면 눈이 터졌을 수 있고, 조금만 위를 맞았으면 뇌출혈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코피가 바로 터진 게 다행입니다. 그 피가 코로 나오지 않았으면 뇌 쪽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코피가 가장 큰 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가장 흉하고 창피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코피 덕분에 피가 빠져나갈 길이 있었던 것입니다.

눈썹뼈를 맞추는 수술 날짜가 잡혔습니다. 정수리 가까이를 가로로 절개하고 머리 피부를 이마 아래까지 내려서 뼈를 맞추는 수술이라, 양쪽 귀 위부터 정수리까지 큰 흉터가 남는 수술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 전화가 왔습니다. “효수야, 엄마가 기도했는데, 꼭 수술을 해야 되겠니? 큰 지장 없으면 보형물만 채워 넣는 방법도 있지 않겠니?” 저는 화부터 났습니다. “예약 겨우 잡아서 선생님 만나고 날짜까지 잡았는데, 그걸 또 언제 취소해요.”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담당 선생님이 제 앞을 지나가셨습니다. 마침 다른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가시던 길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붙잡고 수술을 꼭 해야 하는지 여쭈었습니다.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그러고 보니 두개골 안쪽 벽은 깨지지 않았고, 골절도 기적적으로 신경을 피해 가서 실질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수술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겠네요”라고 답하셨습니다. 선생님도 다른 환자들처럼 당연히 수술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수술은 취소되었습니다.

제가 여쭈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말이었고, 제가 여쭌 것은 어머니의 그 전화 때문이었습니다. 화를 내며 끊어 버린 바로 그 전화 말입니다. 어머니께 화를 냈던 것이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신기해서,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통해 전해 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습니다.

 

  1. 돌아보며

돌아보면 세 번 모두 제가 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홉 살 때는 일주일만 어긋났어도 종양을 찾지 못했을 것이고, 어머니의 불안과 바뀐 집도의가 없었다면 작은 구멍으로 수술을 받았을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한 달 전 친한 형의 말에 들어 둔 보험이 있었고, 마지막에는 거부하려 했던 전화가 수술을 멈추게 했습니다. 어느 것도 제가 계획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간증을 준비하면서 이 말씀을 찾았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사야 55:8-9)

저와 가족은 매번 최선을 다했습니다. 흉터를 적게 남기려던 수술도, 예약을 취소할 수 없다던 제 고집도 저희 나름의 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 생각의 최선이었고, 하나님의 길은 언제나 그보다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여러 번 살려 주셨는데도 저는 매번 얼마 못 가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늘 마음에 걸리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왜 자꾸 살려 두시는 걸까. 여기에는 세 번만 적었지만 더 많은 죽음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제가 깨달은 건, 제가 잘나서가 아닌 저는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고, 살려 두신 분은 따로 계시다는 겁니다.

 

  1. 앞으로

이제는 제가 말한 ‘살던 대로’가 무엇이었는지 압니다. 제 생각대로, 제가 정한 최선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홉 살 때 받은 그 질문,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에 이제 다시 답하려 합니다.

“살던 대로는 더 이상 못 살겠습니다. 누가 저를 살려 두셨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제게는 다양한 일이 일어나고 있고, 제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머니의 불안도, 사고 한 달 전에 들어 둔 보험도, 제 코피도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고, 모두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제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일은 모든 것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원하는 결과를 정해 놓고 그렇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 생각의 최선이 어디까지인지 알기에, 결과는 맡기고 이겨 낼 힘만 구합니다. 요즘 제 기도 제목은 이것입니다. “어디로 흘러가든 주님 뜻대로 하시고, 다만 저에게 이겨 낼 힘을 주십시오.”

이 다짐도 저 혼자 마음먹은 것이라면 얼마 못 가 또 돌아갈 것을 압니다. 여러 번 그래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고백을 남겨 둡니다. 아직 부족해 두려움에 흔들릴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나아가려 합니다. 이런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계시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많은 성도분들이 삶에서 함께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저처럼 수술대에 오르고, 고속도로 밖으로 튕겨 나가고, 머리가 깨져 가며 생사를 넘나든 뒤에야 느끼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